투표하지 않을 권리? by ZeX

요즘 사람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으면서 덧붙이는 말 중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투표할 권리가 있다면 투표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째 이렇게 말하고보니 제가 상당히 나이 많이 먹은 것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넘어가고. (...)



투표는 분명 권리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혹은 시민)이 자신의 의사를 국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방법이지요. 제대로 된 민주 사회에서는 투표권 외에도 국민이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만, 그래도 가장 손쉽고기초적인 권리가 투표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서양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정치형태입니다. 초창기에는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뭐할 정도로 일부 계층에게 권리가 집중되어있었지요. 근대 영국에서도 부르주아계층에게는 1인 2~3표가 주어지는 것이 기본이었다고 합니다. 일반 노동자에게는 투표권이 거의 없었고, 여성에게는 당연히 없었지요.

영국에서 여성에게 투표권이 인정된 것은 1918년. 그나마도 30세 이상에만 한정되었죠.
프랑스의 경우에는 1944년이었습니다.

이렇게 늦게나마 여성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된 것은, 그만큼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달라고 끈질기게 투쟁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권리가 함부로 포기해도 될 만큼 하찮은 것이었다면 애초에 투쟁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투표권의 민주 시민의 기본권 중 하나입니다. 자유로운 삶을 살 권리,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을 권리와 동등하면 동등했지 그 이하로 평가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하다못해 북한 주민들에게조차 허울 뿐이긴 하지만 투표권이 존재합니다.

투표하지 않을 권리? 그런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자살할 권리와 같다고 봅니다. 그것도 그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극단적인 비유를 하자면, 자살하려는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식입니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 투표권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로 알고 있습니다. 예, 솔직히 저도 찍을 사람 한명도 없었습니다. 정책도 모르고,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는지도 모르고, 아는 것은 이름과 얼굴, 소속 당 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투표했습니다.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시민의 기본 조건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뽑는 것이 아닌, 차악을 뽑는 것이 되어버린 선거. 그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긴 합니다. 하지만 '투표하지 않을권리'를 말하며 투표권을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인 방어권을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쓰다보니 어째 좀 지리멸렬한 내용이 되었군요. 어쨌든 제가 하고싶은 말은 이겁니다.

투표하지 않는 것은 권리의 행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적 자살]입니다.

덧글

  • 항상달려 2008/04/09 21:31 #

    의외로 정치적 자살을 선택한 분이 많다는 것에 놀랍니다.
    대학생 총학생회 선거도 어려워지는 이 판국에, 앞으로 이대로 놔두면 좋아질 기미보다는
    악화될 가능성이 더 높아질것 같아 걱정입니다.
  • 안경소녀교단 2008/04/09 21:38 #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라는 단어를 말하는 '투표를 할 권리'를 위해서 우리 할아버지 세대들은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부에 맞서 4.19혁명에 참가하였고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부에 맞섰습니다.

    왜 다들 이런 사실은 모르는지...
  • 에제 2008/04/09 21:48 #

    정치적 자살, 마음에 와닿습니다.
    현재 22세이고 선거를 3번째 한 입장이지만, 점점 더 암담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 승네군 2008/04/09 22:08 # 삭제

    으음.. 투표를 하는것은 '권리'인데 투표를 하지 않는것은 어째서 '권리'가 되지 않는지.. 글을 읽어도 잘 이해가 안되는군요. (제 머리에 '어쨌든 권리' 이렇게 박혀 있어서 그럴거 같긴 합니다만..)

    물론, 자살을 하면 안되긴 합니다만.. 사회적 통념상의 문제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처리해야할 시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개인 소유의 산에 들어가서 무덤을 파고 스스로 땅을 덮어 죽었다! 면 별 무리 없다. 라고 생각하는 쪽이라서..;;)

    그리고, 투표는 각자의 소신 문제일 뿐이죠. 투표를 안한다고 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는 않을겁니다. (게다가 남에게 강요 -의외로 무의식적인 강요들이 많이 생기죠. 부모님이 믿는 당파라던지, 술자리에서 언급되는 정치 이야기라던지..요- 당하지 않는 이상, 개개인간의 신념[뽑을 사람]이 다를테니까요.)

    ...뭐, 우리 전 세대들이 그 '투표권'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신것을 우습게 여기는것은 아닙니다만.. 투표 안한 새끼 개새끼.. 이런 분위기는 뭔가 무서워서... (투표 안/못했어도 못/안했다고 말할수 없는.. 이상하고도 살풍경한 모습..- _-;)

    음, 어쨌든 제가 하고싶은 말은 이겁니다.
    피해주지 않는 행동(정치적 자살)으로 비판받아야 한다는건 무섭다ㅠ_ㅜ.
  • ZeX 2008/04/09 22:38 #

    항상달려 //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 젊은 세대들은 4·19를 겪은 60년대 젊은 세대의 반도 못 따라가지요.
    ...어? 생각해보니까 그때 젊은 세대였던 분들, 지금 다 60~70대네요? (...)



    안경소녀교단 // 그러게 말입니다... 고생 안 하고 얻은 권리라 소중한 줄 모르는 것 같아서 참 답답합니다.



    에제 // 이래놓고 나중엔 또 국회의원들 욕하느라 바쁘겠지요. 자기들이 이런 상황에 일조해놓은 것도 잊은 채.



    승네군 // '투표에서 누구를 찍을까'는 소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투표를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는 소신이 아니라 주인의식의 문제입니다. 투표를 안 하는 것은 스스로 국가의 주인된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투표권은 민주 시민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시민의 의사를 국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은 투표를 제외하면 정책에 참여하는 일이 사실상 전무하죠. 각종 시민단체는 이미 이익집단 수준으로 전락해버린지 오래라는 점, 동감하실 겁니다.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입니다. 선거란 여러 사람의 의사를 모아 자신들의 대리자를 선정하는 것인데, 참여하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제대로 된 의견 수렴은 불가능해집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마을에서 공동으로 야간 방범 장치를 구매설치하기로 했습니다. A업체와 B업체의 물건을 놓고 결정하기로 했는데, 결정하는 자리에 나온 사람은 전체 거주자의 절반도 안 됩니다. 그래서 결국 자리에 나온 절반도 안 되는 사람들끼리 의견을 모은 결과 A업체의 장치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A업체의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많은 가구가 절도 피해를 당했습니다.
    이런 경우, 결정하는 자리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결정하는 자리에 나왔던 사람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요? 자리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을까요?

    투표를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더불어, 타인의 의사마저 희석시켜 무의미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피해를 주지 않을 리 없죠.
  • 조쌍 2008/04/10 02:48 # 삭제

    승네군 님

    지나다 님의 댓글을 보고
    깜짝 놀라서 몇자 적습니다..

    못했어도, 안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없는
    말하는 순식간에 나쁜 놈이 되는 게 무섭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그거에는 어느정도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투표하지않을 권리가 왜 권리가 아니냐는 말씀은..
    한 나라의 국민으로써
    정말 아주 기본적이고도 기본적인 권리이자
    사회책에서 그렇게 많이 배운 투표권의 반대개념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 그게 전 더 무섭습니다;

    아마도 님께서는
    <투표를 안한다고 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는 않을겁니다.>
    이렇게 적으셨는데,
    이렇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투표를 안하는건 내 자유이다, 권리다 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투표를 안하면
    내 주위 사람이 피해를 봅니다.
    자신도 피해를 봅니다.

    정말 몰라서 하시는 말씀인지요..

    학교다닐때 반장선거조차도
    누구를 뽑았느냐에 따라 패가 갈리기도 하고
    또 당선된 반장의 성향에 따라 반의 분위기가 좌우됩니다.
    그런데 국가는 어떻겠습니까

    이건 제가 누구를 뽑았다 안뽑았다
    지지한다 안한다 그런 차원까지 갈 것도 없는
    아주 일차원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설령 피해는 보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행사하지않은 투표권으로 인해
    내가 원치 않는 사람이 되어서
    나에게 내 주위사람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지거나 좋을 수 있었던
    정책들도 펼쳐질 기회가 없어지겠지요

    말이 길어진 것 같네요

    아무튼,
    님께서 한번 더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불탄五징어 2008/04/10 15:55 #

    Z e x // 방문에 감사 차 들렀다가 좋은 표현 하나 보고 갑니다. "정치적 자살" ' ㅅ')b


    승네님 //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이 지금 추세로 계속 늘게 되었을 때

    최악의 경우 우리가 우습게 보고 욕을 하는 정치인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게 됩니다.
    (뭐 지금도 그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고 있는지는 몰라도...)

    투표는 국민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도구 이자
    정치인들에 대한 대다수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견제 장치로도 볼 수 있다 생각합니다.

    괜히 선거 때마다 "심판"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게 아니죠.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뭐... =ㅅ=);;
  • ZeX 2008/04/11 20:30 #

    불탄五징어 //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순식간에 팍 하고 떠오른 걸 보면 어디 책에서 읽었던 것 같기도 해요. -_-a
  • illustory 2008/05/13 23:14 #


    투표는 최선을 뽑기 위해 하는게 아니라...최악을 배제하기 위해 하는 거지요.
    정말 꼭!! 해야 될 사람을 골라서 뽑는게 아니라 정말 해서는 안될 사람을 안뽑히게 하기 위해서...
    이런 생각으로 투표라는 것을 이해 한다면...투표 안할 권리 같은 소리를 할 수는 없겠지요.
  • ZeX 2008/05/15 17:09 #

    illustory 님 // 본래는 최선을 뽑기 위해서였겠지만...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최악을 배제하기 위해서라도 투표를 해야하는 상황이지요.
    외국 어디에서는 한번 투표 안 한 사람은 투표권 박탈한다더군요. 다음 선거때 투표하려면 일정액의 벌금과 함께 타당한 사유를 서류로(해당기간 입원 증명서라든가, 해외 출장 증명서라든가) 제출해야한다던가요. 그거 보고 참 쓸만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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