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하 팬픽] The Age of Revolution (1) 소녀, 소녀와 만나다 by ZeX

※ 이 팬픽은 나노하 StS 이후 약 70년이 지난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주요 인물은 등장하지 않으니 이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공중에 떠 있는 청년, 땅 위에 서 있는 소녀, 그리고 그 앞에 쓰러져있는 소녀.

"또 똑같은 공격인가? 학습 능력이란 게..."

청년의 말을 끊고, 그를 향해 겨눠진 창날이 포효한다.

『A.C.S driver.』"부스트(Boost)!"

"큭!"『Multiple Round Shield.』

충돌하는 창날과 방패. 자신마저 부수는 창날의 압력에 방패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익스플로전(Explosion)!"

굉음과 함께 폭발하는 최외곽의 실드. 하지만 붉은 창날은 멈추지 않고 파고든다. 연이은 폭발음과 흩날리는 파편.
마지막 남은 한장의 실드. 이미 돌격력이 반감된 창날은 그 한장에 막혀 나아가지 못한다. 이를 악무는 창의 주인.

"────────!!"

『────────────────.』

창을 쥔 소녀의 외침에, 상처입은 황금빛 창이 호응한다. 서서히 방패를 뚫고 들어가는 창날. 그리고 방패 뒷면으로 창끝이 빠져나온 순간, 소녀는 온 힘을 다해 외쳤다.

"────────────────!!!"




잠시 후, 섬광이 소녀와 청년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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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S 70년 후 ─ The Age of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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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력 145년 7월, 제 1018관리세계. 행성 에르트(Ert).

행성명과 같은 이름의 통합 수도 에르트 외곽에 위치한 우주공항 밖으로 한 소녀가 짐을 끌고 나왔다. 끝 부분에서 묶은,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과 붉은 눈동자가 아름다운 소녀였다. 하지만 냉정해보이는 얼굴과 몸에 걸친 시공관리국 제복 때문에 그 미모가 반감되는 느낌이 있다는 게 단점이었다. 아니, 유능한 커리어 우먼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는 플러스 요소라고 할 수도 있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소녀는 곧 공항 앞에 줄지어 서있는 택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데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택시 기사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잠시 후 한명이 소녀를 향해 다가왔다.

"손님, 어디로 가십니까?"

"시공관리국 에르트 본부요. 얼마나 걸리죠?"

"흠, 대강 한 30분 정도 걸리겠군요. 타실 건가요?"

"그럴게요. 일단 트렁크부터 열어주세요."

소녀는 자신의 짐을 쳐다보며 말했고, 기사는 바로 트렁크를 열어 소녀의 가방을 넣고 닫았다. 소녀가 뒷좌석에 탄 것을 확인한 기사는 동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운전석에 앉았다.

출발한 다음 기사는 백미러로 뒷좌석의 소녀를 보며 말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국원이신가 봅니다."

"네, 이번에 에르트에 배속됐어요."

"아직 어리... 아니, 젊으신 것 같은데 고생이 많으시네요."

황급히 말을 고치는 기사를 보며 소녀는 살짝 웃었다.

"신경쓰지 마세요, 어린 거 맞으니까. 이제 16살인 걸요."

"그러면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관리국에 입국하신 건가요? 엘리트시네요, 손님."

"엘리트라뇨,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소녀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고, 그 말이 대화의 끝이었다. 그 후로 관리국 에르트 본부에 도착할 때까지 약 30분간, 기사는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소녀는 자신이 뭔가 잘못 말했나 생각해봤지만 짐작 가는 바가 없었기에 그저 조용히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소녀는 본부 로비에 짐을 맡기고 본부장 집무실로 향했다. 로비에서 손님이 없는 걸 확인하고 연락까지 넣었으니, 들어갔는데 선객이 있다는 난감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비서를 통해 한번 더 입장을 통보하고 집무실에 들어서자, 본부장은 마침 공간 모니터를 종료하는 참이었다.

"집무관 실비아 테스타로사 디사이플(Silvia Testarossa Disyple), 시공관리국 에르트 본부에 배속되었습니다."

16세의 소녀 집무관 실비아의 경례에 에르트 본부장 트론 서바이스(Tron Surbise)도 마주 경례를 했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에르트가 처음은 아니라지?"

"예, 어렸을 때 초등교육을 에르트에서 받았습니다."

"그런가, 그러면 대충 3년이 좀 넘었나? 도시가 꽤 낯이 익었겠군."

"오면서 보니 그 사이에 변한 곳도 꽤 있더군요."

"하하, 아무래도 사람 사는 곳이니 변할 수밖에. 그건 그렇고, 살 곳은 구했나?"

"관리국 사관 전용 숙소에 빈 방이 있어서 하나 배정받았습니다. 짐은 어제 다 도착했을 겁니다."

"말하는 걸 보니 도착하고 곧장 왔나 보군. 시간이 급했던 것도 아니고, 숙소에 들르는 것 정도는 해도 되는데 말이야."

트론의 말에 실비아는 우물쭈물했다. 사실 정식 배속일은 내일이었기에, 배속 신고는 나중에 했어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도착하자마자 온 것은 너무 성실해서일 것이다.

"뭐, 괜찮네. 자네가 잘못 한 것도 아니고, 추궁하려는 것도 아니니까. 자네 집무실이라도 한번 둘러보겠나?"

"그러겠습니다. 그런데 업무는..."

"아, 그건 내일. 정식 배치는 내일부터니까."

딱 잘라 말하는 트론의 태도에 실비아는 업무 얘기를 더 꺼낼 수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상급자의 관록에 밀렸다고 볼 수 있었다. 어쨌든 본부장실에 온 용무는 마쳤기에 실비아는 다시 경례를 올렸다.

"집무관 실비아 테스타로사 디사이플,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게."

실비아는 공간 모니터를 띄우는 트론의 모습을 뒤로 하고 방을 나섰다. 걱정했던 것만큼 딱딱한 상관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무실 위치를 본부장실 비서에게서 들은 다음 실비아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트론의 태도를 보건대 그냥 돌아가도 상관 없을 것 같았지만 성격상 자신이 일할 곳을 미리 봐두는 게 마음이 편했다. 코너를 돌아 집무실 문이 눈에 들어왔을 때, 실비아는 그 문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관리국 제복을 입고 붉은 단발머리를 한, 스무살쯤 되어보이는 여성이었다. 시계와 문을 번갈아보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 서 있는 곳은...

'내 집무실 앞이지. 그럼 날 만나러 왔다는 거네.'

거기까지 생각한 실비아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여성은 실비아가 바로 옆까지 다가간 다음에야 눈치를 채고 움찔했다.

"아, 죄송합니다.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아뇨, 괜찮아요. 그런데... 혹시 절 찾아서 오신 건가요?"

"그러면... 디사이플 집무관이신가요?"

"네, 맞아요. 실비아 디사이플이에요."

실비아의 자기 소개를 들은 여성은 반사적으로 경례를 올렸다. 그 기세에 실비아는 자기도 모르게 마주 경례를 할 정도로 절도가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일부터 집무관 보좌역을 맡게 될 수사관 필리아 어니스트(Philia Anist) 하사입니다."

"아, 네. 집무관 실비아 테스타로사 디사이플 중위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경례를 마친 필리아는 살짝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런데 정말 젊으시네요. 저보다 연하인 집무관이 부임해오실 줄은 몰랐어요."

삐딱한 마음으로 들으면 '이런 애송이를 상관이라고 모셔야 한다니'로 들을 수도 있었지만, 실비아는 그렇게 엇나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필리아의 미소도 마치 동생을 대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오해를 할래야 할 수도 없었다.
...사실 상관을 동생처럼 대하는 것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본인들이 신경 안 쓰는 것 같으니 상관없을 것이다.

"아, 네, 뭐... 하지만 필리아 수사관도 아직 젊은데 수사관이라니, 한 실력 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추켜세우셔도 아무것도 안 나와요, 집무관님?"

마주 보며 쿡쿡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은 방금 처음 만난 사이라고 보기엔 어려울 정도로 허물없어 보였다. 아마도 실비아보다는 필리아의 친근한 태도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정식 부임은 내일 아니었나요? 조금 지나칠 정도로 성실하시네요."

"오늘부터는 아니라지만 당장 내일인데, 하루 정도 미리 와서 둘러본다고 나쁠 것 없으니까요. 또 미리 봐두는 게 안심도 되고요."

"그렇기도 하겠군요. 그럼, 들어가실 거죠?"

필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고 옆으로 살짝 비켜섰고, 실비아는 그런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방으로 들어섰다. 방안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있는 거라곤 업무용 책상과 의자 2세트, 그리고 빈 책장 뿐이었다. 자료들은 모두 전산화되어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되니 보관용 캐비닛 같은 것은 필요없고, 전임자의 책을 뺐으니 책장도 텅텅 비어있는 것이 당연했다.
방을 가로지르며 내부를 둘러본 실비아는 의자 뒤편의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고층이라 시야가 탁 트여 있어서, 멀리 시 외곽에 있는 동산까지 내다보이는 것이 좋았다. 도심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것이 무슨 행사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던 실비아는 고개를 돌려 필리아를 바라보았다.

"전망이 좋네요. 가끔 창밖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겠어요."

"고층이라 오르내리는 시간도 걸리는데 그런 장점이라도 있어야죠."

필리아의 대답에 실비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창에서 떨어지려는 순간,

구웅──

둔중한 소리와 함께 창문이 부르르 떨렸다. 집무실의 높이와 유리의 재질을 생각해보면 보통 충격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실비아는 놀라서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눈에 마력광이 난무하는 광장이 비쳤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심에서 마력광이, 더군다나 저렇게 대규모로 발현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엄밀히 말하면 실제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시내에서의 마법 사용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실비아는 광장에서 공격마법과 방어마법이 어지럽게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마법은 광장 외곽 전역에서 사용되고 있었고, 사람들 대부분은 그 사이를 피해 광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저건... 어떻게..."

"시위 진압 중일 겁니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던 필리아가 말했다. 왠지 모르게 말투가 딱딱하게 변했지만 지금 실비아는 광장의 모습에 당황한 상태라 알아차리지 못했다.

"신고되지 않은 불법시위이기 때문에 국원들이 출동해서 해산을 시키는 겁니다. 자주 있습니다, 이런 일."

"자, 잠깐. 시위 진압 중이라고요? 그럼 지금 민간인한테 마법을 쓰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시공관리국 국원들이 민간인을 상대로 마법을 사용해서 시위를 해산'시키고 있다는 얘기에 실비아는 기겁하며 외쳤다. 하지만 필리아는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에르트 본부의 방침입니다. 법치주의에 따라 불법시위를 비롯한 위법행동은 엄중 처벌. 범법자는 끝까지 추적하여 처벌할 것."

필리아가 딱딱한 얼굴로 내뱉는 말에 실비아는 아연실색했다. 분명 원칙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또 평소 같았으면 자신도 찬성했을 말이지만, 지금 광장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그런 생각조차 싹 사라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력으로 안력을 강화해서 진압 현장을 본 실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그 방침, 원래부터 있던 건가요? 적어도 본국이나 지상본부에서는 들은 적 없는데요."

"아니요, 3년 전 현 본부장님께서 부임해오시며 세워진 방침입니다."

필리아의 대답을 들은 실비아는 주먹을 꼭 쥐었다.




로비에서 짐을 찾은 후, 실비아는 숙소로 가는 대신 시위가 벌어졌던 광장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디바이스 셋업 상태의 국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길가는 사람들을 노려보는 모습을 몇번이나 보아야 했고, 그 때마다 실비아의 기분은 가라앉았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곱지 않은 눈초리가 그 착잡함에 박차를 가했다.
30분쯤 걸어 도착한 광장에서는 소방차가 동원되어 바닥을 치우고 있었다. 환경미화원으로는 하루종일 걸려도 치우기 힘들 정도로 어지럽혀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곳곳에 흩어진 부서진 플래카드와 찢어진 옷가지를 보고 실비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필리아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 에르트 주민들과 관리국의 관계는 역대 최악이에요. 아마 전 차원을 통틀어서도 그럴 걸요. 얼마 전에 디바이스 소지법, 마도사 등록법이 입안된 후로 거의 매일같이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매일같이 강제 해산되고 있고요.'

'디바이스 소지법에 마도사 등록법이라고요? 그 법들은 또 뭐에요? 설마, 디바이스를 소유하는 것도 제한이 있는 거에요?'

'네, 우선 마도사들은 반드시 관리국에 등록해야 해요. 등록하지 않은 사람은 마법을 쓴 것이 적발되면 상황이 어쨌든 무허가 마법 사용으로 체포 대상, 최소 징역 5년이죠. 또한 디바이스는 관리국에 등록된 마도사에 한해서 소지가 허용돼요. 등록하지 않은 마도사가 디바이스를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될 경우 역시 체포대상, 최소 징역 3년입니다. 두 법 모두 아직 발효는 안 됐지만 내년 1월부터 정식 발효되죠.'

'잠깐, 그거 이상하잖아요. 미등록 마도사라면 디바이스 소지 허가도 못 받는 건데, 그러면 두 법에 다 저촉되잖아요.'

'하지만 이미 다 통과되었답니다. 그리고 법안 내용이 알려지자 시위가 끊이지 않고, 해산시키려는 국원들의 접근을 방어마법으로 막고, 그걸 뚫으려고 비살상설정이지만 공격마법과 바인드가 사용되고, 시위대측에서도 마법으로 대응하고, 그런 상황을 보며 입안자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고, 사람들은 또 거기에 분노해서 시위에 참여하고. 악순환이에요.'

집무실에서 나오기 전 필리아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바닥을 내려다보던 실비아는, 광장에 남은 국원들 중 상당수가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을 깨닫고는 걸음을 옮겼다. 기분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와 무관한 일에 얽히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시위 진압 책임자와 만나면 자신을 억제하기 힘들 것 같다는 이유가 더 강했다.
광장을 벗어나는 관리국 제복 차림의 소녀를 보던 국원들은, 곧 흥미를 잃고 잡담을 나누던 상태로 돌아갔다.




숙소로 가는 길에는 버스를 탔다. 버스 번호와 정류장은 이미 확인해뒀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기분도 별로 좋지 않은데 그냥 택시를 탈까 생각도 했지만, 앞으로 출퇴근을 버스로 하게 될 테니 미리 한번 타 두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한 5분쯤 갔을까, 실비아는 문득 자기 주변이 허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자가 빌 정도로 승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내 옆자리에 아무도 안 앉네. 서 있는 사람도 몇명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돌아보던 실비아는 엄마의 손을 잡고 서있는 어떤 아이를 발견했다. 대여섯살쯤 되어보이는, 동그란 눈이 귀여운 남자아이였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 실비아는 살짝 웃으며 자기 옆자리를 탁탁 두드렸고,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엄마 손을 끌며 빈 자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

아이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실비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손을 잡아끄는 아이를 끌어당기며. 자신을 경계하는 듯한 모습에 실비아는 충격을 받았다.

'설마... 이 제복 때문이야? 그 정도로 사람들과 국원 사이의 골이 깊은 거야?'

그때, 실비아의 머릿속에 공항에서 탄 택시의 기사가 생각났다. 그 기사도 처음 몇마디를 나눈 후로는 묵묵히 운전만 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표정도 굳어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기억과 지금 아이 엄마의 태도, 거기에 본부에서 목격한 시위 현장의 모습과 필리아의 말을 연결시키자 에르트의 상황이 실감되었다.

'심각하구나... 이래선 차원의 질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차원을 지배하는 것에 더 가깝잖아.'

부임지가 에르트로 결정되었을 때만 해도 어렸을 때 생각이 나면서 기쁘기만 했다. 에르트를 떠난 지는 햇수로 3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해도 그리 많이 변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너무 안이했다. 실비아는 에르트에 온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숙소는 본부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관리국 사관은 대부분 가정이 있기 때문에, 독신자나 단신부임자를 위한 사관 전용 숙소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5층 빌라일 뿐이었다. 관리국 사관 전용이니 평범하다고 보기는 좀 어렵겠지만.
실비아는 먼저 관리실로 향했다. 입주를 확인하고 열쇠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 이번에 입주하기로 한 실비아 디사이플이라고 하는데요."

실비아의 말에 50대쯤 되어보이는 관리인은 읽던 책을 엎어놓고 입주자 리스트를 펼쳤다. 그리곤 실비아의 얼굴과 이름을 확인하고 서랍에서 방 열쇠를 꺼내고는 입주 리스트를 빙글 돌려 실비아에게 내밀었다.

"입주 확인해야 하니, 여기 날짜랑 이름 적고 사인 하시구려."

리스트에 사인을 하던 실비아는 자신의 이름 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퇴거까지 끝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입주 확인란 옆의 퇴거 확인란에도 모두 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혹시나 싶은 생각에 실비아는 관리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입주해 있는 사람, 저 말고는 없나요?"

"아가씨 뿐이오. 마지막에 나간 사람이 아마 지난 봄에 나갔을걸..."

5층짜리 빌라에서 자기 혼자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실비아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온통 깜깜한 빌라에 자기 방만 불이 켜진 광경이었다.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짐까지 다 옮긴 마당에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방을 새로 구한다고 해도 지금은 시간이 늦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찜찜한 기분을 누르며 실비아는 입주자 리스트에 사인하고 열쇠를 받았다.

"아, 짐은 창고에 넣거나 복도에 둘 수 없어서 안에다 옮겨놓았으니 걱정 마시오."

"네, 고맙습니다."

관리인에게 인사한 실비아는 자신의 방, 3층 2호실로 걸음을 옮겼다. 5층짜리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실비아는 포장 상태로 놓인 짐들을 보고, 풀고 정리할 생각을 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청소는 하는지 먼지가 쌓여있거나 하지는 않은 것이 위안이었다. 먼저 편한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겉옷을 벗으려던 실비아의 눈에 낯선 상자가 들어왔다. 크기는 티슈 상자 하나만 했고, 보낸 주소와 받는 주소는 분명 자신의 것이었지만 분면 자신이 부친 기억은 없는 물건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실비아는 상자를 들어 살짝 흔들어보았다. 무게는 그리 많이 나가지 않았고 안에서 크게 흔들리는 느낌도 없었다.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아 결국 상자를 뜯으려는 순간, 왼손목에 달린 팔찌, 정확히는 팔찌에 달린 이중 삼각형 패널에서 목소리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다리십시오, Sir.』

목소리는 실비아의 행동을 멈추려고 했지만, 실비아는 이미 짐을 뜯은 후였다. 그리고 실비아가 짐을 뜯자마자 상자가 폭발했다.

"읏?!"

『Defenser.』

위험한 순간 삼각형 패널의 목소리가 방어마법을 발동시켰다. 그 덕에 실비아는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눈을 뜨고보니 폭발로 방 내부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불이 나거나 벽이나 천장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지만 짐이 모두 손상되고 벽지와 문이 너덜너덜해진 것이, 아무래도 여기서 자기는 틀린 것 같았다. 유심히 보니 찢어진 벽지 사이로 벽에 금이 간 부분이 보이기도 했다.

"하아, 고마워 바르디슈."

『천만에요. 그건 그렇고, sir.』

"응?"

『일단 건물 밖으로 나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건물이 기본적으로 낡은데다 방금 폭발의 충격으로 금이 곳곳에 생긴 것이 파악됐습니다.』

"그렇구나, 일단 나갈까."

바르디슈의 충고에 따라 밖으로 나온 실비아는 놀라서 빌라를 올려다보고 있던 관리인과 마주쳤다. 실비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관리인은 상처가 없어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치진 않은 것 같구려. 어떻게 된 거요?"

"짐에 폭발물이 섞여서 들어온 것 같아요. 위력이 제한된 점이나 불이 나지 않은 걸 봐선 아무래도 비살상으로 설정된 소형 마력폭탄인가 봐요."

"...허, 그럼 ELF인가."

'ELF라...'

혀를 차며 관리실로 돌아가 신고를 하는 관리인을 보며, 실비아는 그가 방금 입에 담은 단어를 곱씹었다.

ELF, 정식명칭 에르트 해방전선. 20년전 에르트 행성 정부가 시공관리국에 항복함과 동시에 조직된 무장투쟁단체. 조직 후 현재까지 관리국에 대한 무력 적대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관리국 에르트 본부에 있어서 가장 큰 골칫거리. 처음 몇년간은 질량 병기로 관리국에 대항했지만 관리국은 비살상 설정의 마법을 사용하는데 비해 자신들은 질량 병기를 사용해 무차별적인 피해를 준다면 정당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에 그 후로 비살상 설정의 마법으로 대응법을 바꾼 것이 특징.

거기까지 생각한 실비아는 낮에 집무실에서 필리아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실 마도사 등록법과 디바이스 소지법의 원래 목적은 ELF의 무장을 약화시키고 활동범위를 축소시키는 거였어요. ELF가 투쟁수단을 질량병기에서 비살상 설정의 마법으로 바꾼 후, 관리국에서 대응하기가 더 힘들어졌거든요. 아무래도 마력이 있고 디바이스만 있다면 누구나 마법을 쓸 수 있고, 그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ELF를 구분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하지만 법안이 발효되면 ELF는 확실히 궁지에 몰리게 돼요. 만약 마도사 등록을 하게 된다면 사건이 벌어졌을 경우 최우선 조사 대상이 되니 위험하고, 하지 않는다면 디바이스 소지가 불허되니 함부로 마도사로 활동할 수가 없지요. 후자의 경우에는 디바이스 감지용 장비까지 개발되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거의 숨어지내는 수밖에 없을 거에요. 어느 쪽이든 ELF에게는 불리하죠.'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고개를 든 실비아는 그제야 빌라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깊이 생각에 빠지는 바람에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건물 구조가 불안한 지금 이렇게 모여있는 것은 위험했기에 실비아는 사람들을 물러서게 했다.

"자, 여러분. 위험하니까 뒤로 좀 물러서세요. 아까 폭발 때문에 건물 상태가 안 좋아요. 위험할지 모르니까 물러서세요."

처음엔 거의 무시당했지만 음성증폭마법을 쓰고 몇번 반복하자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고, 실비아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혹시... 실비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어딘가 낯익은 목소리에 실비아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훌쩍 키가 자라 어른 티가 나는, 하지만 못 알아볼 리 없는 갈색머리 포니테일에 녹색 눈동자의 소녀가 있었다.

"에리나? 에리나 레이벨?"

이것이 두 소녀의, 3년만의 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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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나노하 팬픽입니다. 이 녀석도 다른 사이트에 올렸던 것을 옮기는 거죠.

밸리는 창작으로 보내기는 좀 뭐해서 애니 밸리로 올렸습니다. 팬픽을 창작으로 봐야 할 지 어떨지... 판단이 잘 안 서네요. 2차 창작이라고 하기는 하는데...

연대표 및 설정은 여기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맨 앞에 경고 비슷하게 달아놨듯이, 스트라이커스의 엔딩에서 약 70년 후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은 안 나옵니다.

덧글

  • schnee 2009/01/18 11:58 #

    오웃 한번읽어보니 재밌네요...ㄷㄷㄷ;
    차근차근읽어나가야겠어요..ㄷㄷㄷ
  • ZeX 2009/01/18 17:42 #

    재미있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사실 올리기 시작한 이후로 읽는 분들은 계신 것 같은데 반응이 전혀 없어서 불안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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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 화이트 드래곤
실비아드(Silvi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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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 민트 드래곤
민타리온(Mintar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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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 퍼플 드래곤
아메티아(Ame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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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 레드 드래곤
로트푸르히트(RotFur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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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 마기 드래곤
핸드리드(Handr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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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 가디언 드래곤
패트로니아(Patro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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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 선셋 드래곤
베스페르(Vespe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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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 그레이 드래곤
그라프그라우(GrafGr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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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 블랙 드래곤
슈바르제니아(Schwarzenia)